계약 불이행이 불가항력이라더니? 채무불이행 소송으로 1,870만 원 반환받음
촬영 당일, 모델이 오지 않았다
촬영 스튜디오에 스태프들이 모였다. 장비도 세팅했고, 소품도 준비했다. 빠진 건 하나였다. 모델이었다.
의뢰인은 영상 콘텐츠 제작을 위해 외국인 모델 4명이 필요했다. 모델 에이전시를 운영하는 B와 계약을 맺고, 촬영 전 모델료로 1,870만 원을 미리 입금했다. 계약서에는 모델 이름과 촬영 날짜까지 명시돼 있었다. 그런데 촬영 당일 아무도 오지 않았다.
B 측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때문에 미국 공항이 폐쇄돼 모델들이 입국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스튜디오 위약금은 이미 날아갔다. 소품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1,870만 원은 아직 B 손에 있었다.
채무불이행인가, 불가항력인가
B의 논리는 간단했다. 미국 에이전시에 돈을 보냈고 계약도 체결했으니 의무를 다했다. 모델들이 오지 못한 건 코로나19로 인한 불가항력이니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가항력이 법적으로 인정되려면 조건이 있다. 실제로 입국이 불가능했어야 한다. 정부의 공식 제한 조치가 있었어야 한다.

출처: 한겨레신문
법무법인 이현은 당시 기록을 뒤졌다. 미국 대통령 기자회견 내용, 언론 보도, 정부 공식 발표. 확인된 사실은 하나였다. 촬영 시점에 미국 공항은 폐쇄되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도 미국발 입국을 제한하지 않았다.
코로나19는 핑계였다. 그리고 그 핑계는 증거 앞에서 무너졌다.
결정적이었던 것은 B 자신의 말이었다
사건 직후 대책 회의가 열렸다. B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 에이전시로부터 돈을 못 받더라도 내 돈으로라도 직접 반환하겠다."
이 말은 녹취됐다.
얼마 뒤, 미국 에이전시로부터 돈을 돌려받아야 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말을 바꿨다.
하지만 녹취록은 이미 기록으로 남겨있는 상황. B 스스로 개인적 책임을 인정한 증거였다. 미국 에이전시와 의뢰인 사이에 직접적인 계약 관계가 없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였다.

의뢰인이 계약한 상대는 B였고, 책임져야 할 사람도 B였다.
법원은 B의 채무불이행을 인정했다. 근거는 네 가지였다.
에이전시의 핵심 의무는 모델을 '제공'하는 것이다.
서류상 계약 체결이 의무 이행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는 불가항력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다.
B는 스스로 반환을 약속했다.
법원도 역시, 선급금 1,870만 원 전액을 반환하라고 판결했다.

이겼다고 끝이 아니다
판결문을 받아든 순간 사건이 끝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상대방이 돈을 주지 않으면 판결문은 종이에 불과하다.
법무법인 이현은 소송 초기부터 이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B의 은행 계좌에 가압류를 걸고 현금 공탁을 완료해뒀다. B가 재산을 빼돌릴 여지를 미리 차단한 것이었다.
판결 이후 B는 매달 일정 금액씩 분할 변제하기로 약속했고 이를 이행했다. 법무법인은 변제 과정을 끝까지 모니터링했다. 공탁금 회수를 위한 담보취소결정, 소송비용액 확정 신청까지 마무리하고 사건을 종결했다.
승소 판결을 실제 돈으로 바꾸는 과정, 그것도 소송의 일부다.
채무불이행으로 선급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면
계약 상대방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버티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불가항력을 주장하거나, 제3자 탓을 하거나, 시간을 끌거나.
지금 비슷한 상황이라면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계약서에 명시된 의무가 실제로 이행됐는가
상대방이 주장하는 불가항력이 실제로 성립하는가
상대방의 말이나 약속이 녹취 또는 문자로 남아있는가
상대방의 재산을 먼저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가
선급금을 돌려받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날수록 불리해진다. 상대방은 그 시간을 이용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상대방이 코로나19를 이유로 계약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합니다. 불가항력으로 인정되나요?
불가항력이 인정되려면 당시 정부의 공식 제한 조치가 있었거나 물리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야 합니다. 단순히 코로나19 시기였다는 사실만으로는 불가항력이 성립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입국 제한이나 공항 폐쇄가 없었다면 채무불이행 책임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Q. 상대방이 제3자(미국 에이전시 등)의 잘못이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뢰인이 계약한 상대는 직접 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입니다. 그 당사자가 이행을 위해 제3자를 이용한 것은 당사자의 선택이며, 제3자의 잘못이 의뢰인과의 계약 책임을 면제하지 않습니다. 계약 상대방에게 직접 반환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Q. 선급금을 돌려받으려면 소송까지 가야 하나요?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만으로 상대방이 자진 반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불가항력을 주장하거나 책임을 회피하며 버티면 소송이 실질적인 수단이 됩니다. 소송 전에 상대방 재산을 가압류해두면 판결 이후 회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Q. 선급금 외에 촬영 준비 비용도 돌려받을 수 있나요?
청구할 수는 있지만 입증이 더 까다롭습니다. 스튜디오 위약금, 소품비 같은 추가 비용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습니다. 다만 법원은 해당 비용이 채무불이행과 상당인과관계에 있다는 점을 엄격하게 봅니다. 지출 증빙 자료를 꼼꼼히 챙겨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Q. 상대방이 분할 변제를 제안합니다. 받아들여야 하나요?
판결 전이라면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분할 변제 합의 과정에서 권리 일부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판결 이후라면 강제집행 가능성을 열어둔 채 변제 이행을 지켜보는 방식이 안전합니다.
